디자인 철학: 페터 춤토어, 재료로서의 분위기

원칙
“건축을 가장 헐벗었으면서도 가장 풍요로운 본질로 깎아내면서, 그는 취약한 세계 속에서 건축이 차지하는 없어서는 안 될 자리를 다시 확인시켰다.” –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 2009년1
심사위원단의 이 문장에는 의도된 모순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헐벗었으면서도 가장 풍요로운. 춤토어(Peter Zumthor)의 건물은 형태로 보면 금욕적입니다. 유리 상자 하나, 돌판 하나, 들판에 선 콘크리트 탑 하나. 그러나 경험으로는 압도적입니다. 이 역전이 곧 그의 철학입니다. 대부분의 건축이 사진에 담기는 것에 투자할 때, 춤토어는 사진이 결코 담아낼 수 없는 모든 것에 투자합니다. 방의 온도, 발소리에 바닥이 되돌려주는 울림, 데워진 돌의 냄새, 문의 정확한 무게. 그는 저서 Atmospheres에서 이 태도에 이름을 붙였고, 유일한 성공 기준을 한 문장으로 밝혔습니다. “내게 좋은 건축이란 건물이 나를 감동시키는 데 성공했을 때다.”3
수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하얏트 재단 이사장 토머스 J. 프리츠커(Thomas J. Pritzker)는 같은 지점을 구조적으로 짚었습니다. “페터 춤토어의 모든 건물은 강하고 시간을 초월한 존재감을 지닌다.”7 존재감이 곧 결과물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수단입니다.
배경
춤토어는 1943년 바젤에서 가구장이의 아들로 태어났고, 그의 이력은 끝내 그 공방을 떠나지 않습니다. 1958년부터 1962년까지 아버지의 일을 도제로 배웠고, 바젤의 Kunstgewerbeschule에 이어 뉴욕의 Pratt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 훗날 그의 두 번째 교육이 된 자리에 앉습니다. 그라우뷘덴주 기념물 보존국의 건축·계획 자문이자 건축 분석관이었습니다.2 오래된 알프스 건물을 조사하고 복원하며 보낸 10년은 학교가 좀처럼 가르치지 않는 것을 그에게 가르쳤습니다. 재료가 어떻게 나이 드는지, 구축 방식이 어떻게 문화를 품는지, 200년 동안 쓰인 건물이 어떤 감촉을 지니는지를 말입니다.
1979년 그는 그라우뷘덴 산중의 마을 할덴슈타인에 자신의 사무소를 열고, 이후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작게 남는다는 결정입니다. 프리츠커상 약력은 사무소 인원을 15명 남짓으로 기록합니다.2 작다는 것은 한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도구입니다. 15명짜리 사무소는 물량을 좇을 수 없으므로 일을 혹독하게 고르고, 한 건에 몇 년을 쓰며, 창립자의 손이 모든 디테일에 닿아 있게 합니다. 가구장이의 아들은 공방을 닮은 사무소를 지었고, 그곳에서 건물은 공방의 속도로 나옵니다. 드물게, 신중하게, 결까지 마감되어서.
작업
Therme Vals(1996): 산 안에서 목욕하기
발스 마을 위에 자리한 온천욕장은 이 골짜기에서 나는 규암을 얇은 층으로 켜켜이 쌓아 올렸고, 지붕을 풀로 덮어 위에서 보면 건물이 지형처럼 읽힙니다. 내부에서 춤토어는 욕조와 돌방의 연쇄를 악기처럼 조율했습니다. 온도를 달리하고, 빛을 달리하고, 어떤 곳에서는 소리를 죽이고 어떤 곳에서는 울리게 했습니다. 눈만큼이나 피부로 겪는 건축입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배관을 보러 여행해 본 적 없던 사람들에게, 외딴 알프스 마을을 순례지로 바꿔 놓았습니다.

Kunsthaus Bregenz(1997): 예술을 위한 등불
보덴 호수를 마주한 이 미술관은 서리 낀 얼음처럼 빛을 머금는 에칭 유리 비늘로 감싼 정육면체입니다. 햇빛은 파사드를 통과해 들어와 각 전시실 위의 플리넘에 갇혔다가, 광원이 보이지 않는 고른 빛이 되어 방에 도착합니다. 콘크리트 벽과 바닥은 구조의 몫을 조용히 감당합니다. 광장에서 보면 날씨를 기록하는 등불이고, 안으로 들어서면 현대 미술관 건축에서 가장 엄격하게 통제된 자연광 장치입니다. 하나의 재료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간 결과입니다.

Bruder Klaus Field Chapel(2007): 불이 지은 집
바헨도르프 인근 들판에 수호성인을 위한 예배당을 원했던 한 농가와 이웃들에게, 춤토어는 결과만큼이나 전례적인 공법을 건넸습니다. 112개의 가문비나무 줄기를 서로 기대어 텐트처럼 세우고, 그 둘레에 다짐 콘크리트를 손으로 약 24개 층에 걸쳐 한 켜씩 다져 넣었습니다. 그런 다음 내부에서 느리고 통제된 불을 계속 태워 줄기가 그을려 떨어져 나오게 했고, 열린 오쿨루스 아래에 검게 탄 주름진 공동이 남았습니다.4 다지는 일은 지역 농부들이 했습니다. 벽은 그 노동을 눈에 보이는 띠로 기록하고, 내부는 불을 기록합니다. 열린 지붕은 비를 들이고, 빗물은 바닥에 고여 하늘을 비춥니다. 금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작은 건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중 어떤 것도 외관 사진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이 건축의 주장입니다.

Kolumba(2007): 폐허에서 자라난 미술관
쾰른 대교구를 위해 춤토어는 고딕 성당 장크트 콜룸바의 폭격 잔해 위에서 곧바로 미술관을 세웠습니다. 길고 얇은 회색 벽돌이 중세의 돌에서 위로 이어지고, 새 벽이 옛 폐허 위를 지나는 구간에서는 조적이 구멍 뚫린 격자로 열려 발굴장 위 높은 홀로 걸러진 빛과 바깥 공기를 들입니다. 유리 진열장 전시가 아니라 연속으로서의 보존입니다. 폐허는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지어집니다. 중세 성당과 2007년 사이의 이음매는 나이테처럼 읽히는 한 장의 벽입니다.65

방법
춤토어의 방법은 절차가 된 인내입니다. 프로젝트가 몇 년씩 이어지는 까닭은 사무소가 그의 아버지가 나무를 다루던 방식 그대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실물 크기 목업, 손으로 확인하는 재료, 필연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려지는 디테일. Atmospheres는 그의 체크리스트를 펼쳐 놓는데, 건축 이론의 어떤 글과도 닮지 않았습니다. 공간의 소리, 공간의 온도, 주변의 사물, 안과 밖 사이의 긴장, 친밀함의 정도, 사물 위에 놓인 빛.3 이것들은 시적인 뒷생각이 아닙니다. 그의 요구사항 명세서입니다. 엔지니어가 하중에 맞춰 설계하듯, 그는 이 항목들에 맞춰 설계합니다.
방법의 나머지 절반은 거절입니다. 산골 마을의 작은 사무소, 까다로운 클라이언트 선택, 건물과 건물 사이에 몇 년이 흐르는 것을 감수하는 태도. 이것은 공급에 관한 결정입니다. 희소함은 마케팅이 아닙니다. 이 해상도의 품질이 실제로 요구하는 제조상의 제약입니다.
영향의 사슬
그를 만든 것
오스카 춤토어의 공방 – 장인의 기준. 가구 제작 도제 수업은 그가 세계를 들여다보는 해상도를 정해 주었습니다. 이음, 표면, 맞음새.2 (형성기의 훈련)
그라우뷘덴 보존국 시절 – 스승으로서의 옛 건물. 알프스의 역사적 구조물을 분석하고 복원한 10년은 재료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실용적 지식과, 건물은 그 구축 방식 안에 문화를 담고 있다는 확신을 그에게 주었습니다.2 (형성기의 경험)
그가 만든 것
분위기로의 전환. Atmospheres와 Thinking Architecture는 공간의 감각적 성질, 곧 소리와 온도와 존재감을, 이미지 우선의 작업에 지친 한 세대의 건축가에게 떳떳한 디자인 어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3
느린 건축. 할덴슈타인 모델 – 작은 사무소, 적은 프로젝트, 몇 년에 걸친 숙성, 장인과의 협업 – 은 글로벌 스튜디오 체제에 맞서 인용되는 반례가 되었습니다. 사무소가 공방 크기에 머물면서도 한 시대를 규정하는 건물을 내놓을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관통하는 선
춤토어와 구마 겐고는 이 시리즈의 짝을 이루는 두 사람입니다. 같은 세대, 같은 재료 우선의 확신, 그러나 정반대의 동사. 구마는 건물을 녹입니다. 입자, 격자, 주변에 지는 건축. 춤토어는 건물을 응축합니다. 질량, 분위기,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존재감. 둘 다 이미지-오브제를 거부하지만, 한 사람은 사라짐으로써 벗어나고 다른 한 사람은 무게로 압도함으로써 벗어납니다. 안도 다다오는 그 곁에 서서 콘크리트에 침묵을 타설하지만, 안도의 재료가 빛이라면 춤토어의 재료는 온기입니다. 그리고 장인의 계보는 이 시리즈를 거슬러 디터 람스까지 이어집니다. 더 적게, 그러나 더 좋게. 다만 춤토어는 그 “더 좋게”를 어떤 사양서에도 담기지 않는 성질에 씁니다. (시리즈 연결)
내가 여기서 얻는 것
Atmospheres는 아무도 문서로 남기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영역에 대해 제가 아는 최고의 요구사항 명세서입니다. 앱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즉 애니메이션의 무게, 키보드의 소리, 온도로서의 지연 시간은 춤토어의 체크리스트를 화면으로 옮겨 놓은 것이며, 장식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입니다. Bruder Klaus의 불은 과정에 관한 교훈입니다. 어떤 성질은 서두를 수 없는 방법으로만 만들어지고, 그 방법은 결과물에 자국을 남깁니다. 작은 팀이 천천히 쌓아 올린 코드베이스가 큰 조직이 빠르게 조립한 코드베이스와 다르게 읽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할덴슈타인의 거절은 제가 가장 자주 되돌아오는 규모에 관한 교훈입니다. 작게 남는 것은 확장에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일하려는 해상도를 고르고, 그것을 지키는 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페터 춤토어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입니까?
건축의 실체로서의 분위기입니다. 춤토어는 공간의 감각적 성질, 곧 소리와 온도와 재료의 존재감과 빛과 친밀함을 겨냥해 설계하고, 결과를 한 가지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내게 좋은 건축이란 건물이 나를 감동시키는 데 성공했을 때다.”3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그 결과물을 “집중되어 있고, 타협이 없으며, 유별나게 단호한” 작업이라고 요약했고,1 수상을 발표한 토머스 J. 프리츠커는 그의 모든 건물이 “강하고 시간을 초월한 존재감”을 공유한다고 덧붙였습니다.7
페터 춤토어의 대표작은 무엇입니까?
스위스의 Therme Vals(1996), 오스트리아의 Kunsthaus Bregenz(1997), 독일의 Bruder Klaus Field Chapel(2007), 쾰른의 Kolumba(2007), 그리고 Sumvitg의 Saint Benedict Chapel(1988)입니다. 목록이 짧은 것은 의도된 결과입니다. 그는 작은 사무소를 운영하고 한 건에 몇 년을 씁니다.2
Bruder Klaus Field Chapel은 어떻게 지어졌습니까?
112개의 가문비나무 줄기를 텐트 모양의 심으로 기대어 세우고, 그 둘레에 다짐 콘크리트를 약 24개 층으로 손으로 다져 넣었으며, 그 작업은 대부분 지역 농부들이 했습니다. 이어서 내부에서 느리고 통제된 불을 태워 그을린 줄기를 걷어낼 수 있을 때까지 두었고, 하늘과 비에 열린 오쿨루스 아래로 검게 탄 주름진 내부가 남았습니다.4 공법 자체가 의미입니다. 노동과 불과 날씨가 완성된 예배당 안에서 모두 읽힙니다.
페터 춤토어는 왜 프리츠커상을 받았습니까?
2009년 심사위원단은 “집중되어 있고, 타협이 없으며, 유별나게 단호한” 작업을 인용하며, “건축을 가장 헐벗었으면서도 가장 풍요로운 본질로 깎아낸” 점을 높이 평가했고, 그럼으로써 “취약한 세계 속에서 건축이 차지하는 없어서는 안 될 자리”를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1 이 상은 보기 드문 밀도를 지닌 소수의 작업, 곧 생산량이 아니라 존재감에 바쳐진 이력을 인정한 것입니다.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심사평: 페터 춤토어 (2009) – “집중되어 있고, 타협이 없으며, 유별나게 단호한 작업으로 전 세계 동료들에게 존경받는 거장 건축가”; “건축을 가장 헐벗었으면서도 가장 풍요로운 본질로 깎아내면서, 그는 취약한 세계 속에서 건축이 차지하는 없어서는 안 될 자리를 다시 확인시켰다.” ↩↩↩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약력: 페터 춤토어 – 1943년 바젤 출생, 가구장이의 아들. 1958~62년 가구장이 도제. Kunstgewerbeschule Basel(1963~67)과 Pratt Institute 수학. 1967년부터 그라우뷘덴주 기념물 보존국의 건축·계획 자문 겸 건축 분석관. 1979년부터 할덴슈타인에서 자신의 사무소 운영, 직원 약 15명. ↩↩↩↩↩
-
Peter Zumthor, Atmospheres: Architectural Environments, Surrounding Objects (Birkhäuser, 2006) – 분위기 체크리스트(공간의 소리, 공간의 온도, 주변의 사물, 친밀함의 정도, 사물 위에 놓인 빛)와 “내게 좋은 건축이란 건물이 나를 감동시키는 데 성공했을 때다.” Thinking Architecture (Birkhäuser, 1998; 증보판 2006, 2010)도 참조. ↩↩↩↩
-
ArchEyes, Bruder Klaus Field Chapel by Peter Zumthor: Rammed Concrete and Sacred Silence – 안쪽으로 기울인 거푸집 역할을 한 가문비나무 줄기 112개, 약 24켜로 손으로 다진 건비빔 콘크리트, 줄기를 그을려 떼어낸 느리고 통제된 불, Scheidtweiler 가문을 후원자로 둔 지역 농부들의 시공, 열린 오쿨루스. ↩↩
-
사진: 페터 춤토어 초상은 Brigitte Lacombe 촬영, Kunsthaus Bregenz 보도자료실 제공. Bruder Klaus Field Chapel은 Kenta Mabuchi(CC BY-SA 2.0), Therme Vals는 Gunnar Klack(CC BY-SA 4.0), Kunsthaus Bregenz는 Böhringer Friedrich(CC BY-SA 3.0 AT), Kolumba는 Raimond Spekking(CC BY-SA 4.0) 촬영이며, 뒤의 네 장은 Wikimedia Commons를 통해 얻었습니다. ↩
-
Kolumba, 건축 – 쾰른 대교구의 미술관(1997년 공모, 2003년 정초, 2007년 완공). 고딕 성당 장크트 콜룸바의 폐허와 전후에 뵘이 설계한 “폐허의 마돈나” 예배당 위에 세워졌으며, 춤토어의 구멍 뚫린 벽돌이 발굴 홀을 감싼다. ↩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발표: 페터 춤토어 (2009) – 하얏트 재단 이사장 토머스 J. 프리츠커가 수상 발표에서 심사평을 인용한 뒤 남긴 말. “페터 춤토어의 모든 건물은 강하고 시간을 초월한 존재감을 지닌다.” ↩↩